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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내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 미아키 스가루

by 버밀리오 2016.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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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내일 뱀이 되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다면,

사람을 잡아먹은 그 입으로 나를 사랑한다 외친다면,

나는 과연 오늘과 똑같이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가 참 인상적으로 봤던 글귀 중 하나입니다.

 

저 말이 나오는 만화 블리치는 가면 갈수록 여러가지로 한숨쉬게 만드는 요소 때문에 제 마음 속의 지분이 급전직하했지만 그래도 저 말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여러가지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기 때문일까요.

 

미아키 스가루의 '네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내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를 읽고 어쩐지 저 말이 생각나더군요.

 

 


「네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수화기를 들어버린 그 순간, 신비한 여름이 시작된다.


“내기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수화기 너머의 여자는 말했다.


“열 살 때의 여름, 당신은 하지카노 씨에게 연심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당신에게 그 사람은 너무나도 먼 존재였습니다. ‘나에게는 저 애를 사랑할 자격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당신은 하지카노 씨에 대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습니다. ‘이 반점만 없다면, 혹시나.’라고. 그러면 실제로 반점을 없애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결과, 하지카노 씨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내기는 당신의 승리입니다.”

 

 


「내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 추한 반점만 없다면 하지카노 유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화의 여자’가 제시한 내기에 응하는 것으로 내 얼굴의 반점은 사라졌다.

이상적인 모습을 얻은 나는, 그날 밤 하지카노와 재회한다. 그러나 얄궂게도, 3년 만에 재회한 그녀의 얼굴에는 어제까지의 나와 똑같은 추한 반점이 있었다.

당황하는 나에게 전화의 여자는 말한다. 이대로 하지카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내기는 나의 패배가 되고, 나는 『인어공주』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변해버린 사람을, 입장이 역전되어버린 사람을 과연 그 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변해버린 그 사람은 나를 과연 그 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기가 쉽지가 않죠.

 

강풀의 만화 '아파트'에서 여자의 아픔과 괴로움을 나누겠다고 한 남자가 막상 그 고통을 받게 되니까 이렇게 괴로울 줄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한 장면을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힘들어요. 그러니 그 계속되는 사랑이 미담으로 미디어에 나오는 거죠.

 

'네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내가 전화를 걸었던 장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남의 단절과 세월의 흐름, 뒤바뀐 입장. 결정적으로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거기다 둘다 말 못할 사연까지 있어요.

 


이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실제로 이야기는 암울하면서도 안타깝게 흘러갑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어? 그렇게 나쁜 일들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겠어?' 하면서 과연 행복한 결말이 있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렇기에 이 소설의 결말이 빛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거기에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되었다해도 미래를 만들어낸 건 그들이니까요.

 

생각보다 단서가 있었던 '전화의 여자'도, 마지막에 나오는 또다른 인연도 좋았습니다.

 

부처님 손아귀라는 느낌이 드는 건 좀 그랬지만 그래도 괜찮은 마무리였다고 생각해요.

 


미아키 스가루의 책은 이게 처음 읽어보는 건데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볼까해요.

 

지금까지 나온 책도, 앞으로 나올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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